세상 인연과 상호의존성을 토대로 한 ‘하나’
개별 회화 재료 물성 해치지 않고 조화 이뤄
불교적 가르침의 핵심 중 하나는 ‘인연’이다. 모든 것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돼 있다는 것. 세상과 우주는 인연과 상호의존성을 토대로 한 ‘하나’라는 의미이다. 생명도 마찬가지이다. 홀로 존재 할 수 없는 것은 삶과 죽음도 그렇다. 양자역학을 포함한 현대물리학도 우주의 진행과정은 전체성을 지니고 있고, 우주는 하나로 연결된 전체라는 시각을 보여준다. 이것은 의상대사의 〈법성게〉의 한 티끌에 온 우주가 담겨있다는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과 상통한다. 불교와 현대물리학의 인식은 동일선상에 있다. 미술 등 예술도 그러하다. 현대미술에서 불교는 별개의 세계가 아니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양자는 동일선상에 위치한다. 서구 미술의 발전은 기독교적 사상과 철학, 생활의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불교로 접근했다. 우주적, 자연적, 인간적 관점에서 예술은 불교의 ‘인연’과 ‘공(空)’의 세계로에 근접하며 ‘알음알이’보다 ‘지혜’를 구상화했다.
‘빛의 화가’ 방혜자의 작품은 ‘인연’, ‘일미진중함시방’의 가르침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또 현대물리학의 우주관과 다르지 않다. 예술이 불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있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방혜자는 빛의 생성과 소멸, 우주적 인연을 화폭에 옮기는 그녀만의 깊은 심미안을 작품에 투영한다. 내면적 성찰과 희로애락을 여읜, 정화되고 절제된 터치는 그의 예술 신념이 물질적 세계에 머무르지 않고 정신적 귀의처를 찾는 수행의 과정임을 여실히 보여준다.〈우주의 진동〉 〈하늘과 땅에서〉 〈빛의 탄생〉 〈대지의 빛〉 〈우주의 숨결〉 〈자연의 숨결〉 〈생명의 숨결〉 〈빛의 눈〉 〈빛의 소리〉 등 방혜자의 ‘빛’작품이 내뿜는 메시지는 카오스(혼돈)에서 코스모스(조화)를 찾아가는 정신적, 내면적 서사의 노래이다.
“마음의 빈자리에 침묵의 빛 피어나는 아침, 핏줄기로 흐르는 정결한 소리 가득하고 작음 세포 하나하나 웃음으로 솟아 오른다. 극미세계의 작음 입자 속으로 붓끝을 대면 작은 것은 아름답다고 자연의 숨결은 알려준다. 정밀한 실상의 세계 빛의 떨림이 진동하는 자리 안으로 걸어가 작은 입자들의 속속까지 뚫고 들어가면 빛이 열린다. 침묵의 빛으로 가는 길은 어린아이처럼 마음의 눈 밝아지는 길 허물을 벗어 던지고 새로 태어나는 길.”
방혜자는 자신의 노트에 이렇게 노래한다.
1994년 봄, 50대 중반 그녀는 심신이 지치고 생로병사의 추함을 느꼈다. 자신의 추함이 이웃까지 우울하게 만든다는 것을 안 그녀는 생명의 아름다움, 생명의 실상(實相)은 곧 빛이며 자비인 것을 깨달았다. 어둠과 미운 마음으로 누에고치처럼 자신을 꽁꽁 묶어 놓고 괴로워하는 그녀의 어리석음을 밝혀 준 것은 빛이었다.
방혜자의 ‘빛’은 평화로운 세상을 화폭에 옮겨 놓은 듯하다. 시비를 나누지 않고 자신의 주변 것들과의 조화, 숨쉬는 모든 것과의 소통을 사랑하려 애쓴다. 미세한 사물에도 생명이 꿈틀대고, 숨을 쉬는 모습에서, 돌과 바위에서도 꽃이 피는 아름다움에서 그녀는 생명의 실상을 느끼고 자신의 몸과 마음이 유연하게 바뀌는 놀라움을 맛보았다. 이는 〈법성게〉의 ‘일미진중함시방’의 의미와 다르지 않으며,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과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별, 나무, 구름, 자동차, 생명체 등등 모두가 독립적 방식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주의 실상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생하는 것이 없음을 증명하며, 부처님은 모든 것이 ‘연생(緣生)’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한 그루의 나무도 햇볕과 물과 바람과 흙의 도움을 받아 싹이 트고 자라며, 그 나무도 주위 사람들의 식생활 방식과 깊은 인연의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구름이 땅의 세상의 모든 물이 증발해 결정된 체이며, 바람의 일어남이 태양의 온도변화와 밀접한 연관을 지닌다. 태양 역시 우주의 다른 별들과의 상관관계와 인력의 작용으로 존립한다.
그의 작품 ‘빛의 숨결’은 우주의 모든 존재자가 둘이 아님을 표현하며, ‘공의 세계’를 추상한다. ‘빛의 탄생’은 존재하는 색(色)은 다 인연 따라 생멸을 반복하지만, 공은 생명의 세계를 초탈하고 모든 존재의 다양성이 존재하도록 섭수(攝受)해 조화롭고 원융한 세계를 표현한다. 방혜자의 ‘빛’ 작품들은 색과 색이 어울리고, 선과 선이 얽히되 이분화돼지 않고 조화를 이룬 빛의 탄생(만남), 대화(조화), 비상, 소멸(떠남) 등을 추상하며 우주 실상의 본질을 ‘공(空)’과 ‘동체대비(同體大悲)’에서 찾는다. 또 에로스(생명)와 타나토스(죽음)가 둘이 아닌 하나인 ‘불이(不二)’의 사상도 담아낸다.
그녀는 ‘원방각(圓方角)’을 활용 우주와 대지와 인간의 관계가 동떨어지지 않고 연생의 관계인 것을 극명히 드러낸다. 또한 ‘천원지방(天圓地方)’‘방원동정〔方圓動靜)’의 사상도 담아낸다. 둥글면서 움직이는 것은 밖에 있어 하늘이고, 네모나면서 고요하게 안에 있는 것은 땅이다. ‘빛의 입자’는 이 같은 사상을 극명히 보여준다.
방혜자의 ‘빛’은 비로자나불(大日如來)의 현신과 다름이 아니다. 그녀의 빛 시리즈 가운데 ‘빛의 눈’은 마치 불보살의 천안(千眼)을 화폭에 옮긴 듯하다.
방혜자의 빛 작품들은 ‘불교적 사유의 추상적 구체화’라 할만하다. 이는 작가의 작품활동과 생활에서 기인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작가는 매일 아침 예불과 〈법성게〉 독경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작업은 명상으로부터 시작된다. 자신의 DNA에 가득찬 자비와 평화로움의 움직임을 끄집어내야 작업이 이루어진다.
방혜자는 자신의 작품에 코스모스, 즉 질서와 조화를 이룬 우주를 표현하는 데 있어 화폭과 채색 재료의 물성을 해치지 않는다. 우주의 평화와 조화를 추상하기 위해 재료선택부터 친환경적이다. 그녀의 캔버스는 닥종이와 무직천의 앞과 뒤이며, 색은 천연안료만을 고집한다. 환경파괴는 우주의 질서를 거스른다고 믿는 그녀는 화학적 가공을 거치지 않은 닥종이와 무직천에 천연안료를 세포 구석구석까지 거친 듯 담백하게 질감이 스며들게 한다. 닥종이와 무직천의 물성을 해치지 않고 자연스레 물성을 드러내 천연채색제와 어울리게 기를 북돋는다. 닥종이의 흡수성과 번짐을 신중히 다루고 무직천의 앞뒷면을 모두 사용해 자체의 물성을 한껏 뽐낸다. 무직천의 앞뒤에 반복해 입힌 안료는 여러 형태의 빛의 성질을 극대화한다. 그녀만의 독특한 표현기법은 물질적 화려함을 배제하고 정신적 고요함을 극대화하는 창작의지의 산물이다.
방혜자는 지향점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우리는 꿈과 희망을 멀리서 찾지만 정토의 세계는 멀리 있지 않고 현재 존재한다고 믿는다. 자신을 버리고 비워 나 외의 것을 받아들여야 새로운 땅, 정토의 귀중한 세계를 만난다고 믿는 것이다.
방혜자는 우주의 아름다움은 보이지 않는 새로운 세계이지만 마음의 눈을 뜨면 누구나 보인다고 말한다. 우주는 세포를 통해 먼 옛날부터 우리 안에 기록돼 전해진다고 그녀는 강조한다. 그녀가 말하는 ‘나’는 많은 것들의 흔적이 첨가되고 부가되어 모인 물질과 생각들의 기(氣)가 모인 가상적인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나의 몸은 부모로부터 빌려온 것이다. 단순히 수동적으로 빌린 것이 아니라, 나의 전생의 업도 함께 왔다. 용수 보살의 “인연으로 생긴 일체의 존재자로서의 색은 다 공에 불과하다”는 말처럼 그녀의 빛은 ‘공의 세계’를 표현하는 것이다.
방혜자는 올해 일흔 살이다. 고희의 연약한 몸짓은 느릿느릿하지만 마음에서 뿜어진 빛의 세계는 힘이 넘치면서도 고요한 정중동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녀에게 회화는 현실로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정서, 생의 불안으로부터 불현듯 오는 것이라 확신한다. 그녀가 불교와 전통문화에 심취해 얻어진 상상력을 화폭에 옮기며 내면의 평화를 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방혜자의 법명(法名)은 ‘연화장(蓮花藏)’이다. 파리 길상사 개원식 당일 모두들 계를 받는 자리에서 자신은 불교공부가 덜돼 계를 받지 않은 것을 안 법정 스님이 나중에 계를 받으면 쓰라며 지어준 법명이다. 방혜자의 그림은 단순히 감상용에 그치지 않고 사찰 법당의 성보(聖寶)로도 봉안된다. 파리 길상사•서울 방화 개화사•평창 보각사 등의 후불탱화가 바로 방혜자의 빛 작품이다. 그는 기자가 내민 자신의 책 《마음의 침묵》에 이렇게 썼다. “빛의 숨결에서 하나됨을 기뻐하면서….” 고희의 나이에도 맑고 힘찬 내공이 실린 필체였다.
만불신문 184호 2007년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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